Ⅰ. 개요
미국의 인류학자이며 언어학자인 써피어(E. Sapir)는 ‘언어란 사고, 정서, 소망을 기호로 만들어진 자의적 체계의 수단에 의하여 전달되는 순전한 인간 그리고 비본능적인 방법이다’라고 했으며 영국의 언어학자인 포터(S. Potter)는 ‘언어란 인간존재가 상호전달하고 협동하는 방법으로서의
近代文藝-自然主義, 新浪漫主義, 附 象徵派詩歌와 詩人」(<개벽> 12-21호, 1921. 6. 1-1922. 3. 1) 끝머리에 “日本 廚川博士著 近代文學十講에서 많이 자료와 또는 가져온 것을 말씀하여 둡니다.” 라고 단서를 달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영의「近代史上硏究」(<서울임시호>, 1920. 12. 15), 姜邁의「生活과
文藝思潮의 屈折的인 受容으로 近代小說의 대두와 그 成長을 가져오게 된다.”(구인환, 『韓國近代小說硏究』, 삼영사(1980), 14쪽)
이때의 시대적 특징은 반봉건, 반외세이다. 따라서 문학인들은 내적으로는 외국문학을 수용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전통을 근대적으로 탈바꿈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외적
近代的인 性格의 시의 開化를 보았다. 뿐만 아니라 西歐詩와 積極的으로 交接하면서 1920년대 시는 그 以前의 詩와 比較하여 그 方法과 認識의 觀點에 상당한 轉換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또한 事實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그 이전의 詩의 系統的 교훈주의와 같은 觀念的이고 抽象的인 他說的 形式의
文藝)》 ,《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 《삼광 (三光)》 ,《창조 (創造)》 등의 문예지가 주종을 이루었고, 그 밖에 종합지로서 《청춘 (靑春)》 ,《공도 (公道)》 ,《근대사조 (近代思潮)》 등이 있었 으나, 본격적인 종합 지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것들이었다. 이와 같이 정치성 ․사상성이 극도
文藝는 新人들이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詩와 비평」,「詩 연구」,「신시학」,「시 작업」등의 시 전문지와 동인지의 刊行 그리고 各種 사화집 간행은 시단의 질서를 새롭게 편성했다.
이들 詩人들은 독특한 視覺을 가지고 그들의 詩世界을 개척하기 이른다. 이들이 추구하는 서
近代小說考」에서 작가론을 시도한 평론가로서 직능을 이룩하였다. 김동인의 순문학 기치가 춘원 이광수 문학의 반기로 시작하듯 비평 또한 그러하다. 동인은 춘원의 소설에서 계몽사상을 보는 대신 독자와 소설이 맺어지는 표정을 문제 삼았다. 김윤식, 『김동인연구 』민음사, 1987. 322쪽
즉, 춘원
近代文學〉는 전후문학의 커다란 추진력이 되었다. 하니야 유타카[埴谷雄高], 오오카 쇼헤이[大岡昇平], 다케다 다이준[武田泰淳], 나카무라 신이치로[中村眞一郞],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등도 쇼와 20년대 전반부터 활약하기 시작했다. 1950년을 전후해 등장한 아베 고보[安部公房], 홋타 요시에[堀
文藝>> 월간을 창간하여 계속적으로 <<무궤열차>>의 두 가지 주요 경향을 계승∙발전시켰다. 첫째, 이들은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좌련 左聯 을 지지하여 무산계급 문학의 동반자가 되었으며, 둘째로 일본의 신감각파 및 심리분석 소설의 소개와 학습에 열중하였다.
유납구는 일본의 신감각파 작
(課題)를 짊어지고 있었다. 이에 발맞추어 문학에서도 몇 가지 과제(課題)가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첫째, 근대적(近代的) 민족문학(民族文學)을 수립(竪立)해야 했으며, 둘째로는 이전의 우리 문학의 전통을 창조적(創造的)으로 계승하면서 현대문학(現代文學)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